마누카 꿀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마음으로 이민을 결정하고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렸다. 처제가 살고 있는 시드니로 가고 싶었다. 이런저런 점수를 따져보던 이민회사 여직원이 “선생님 점수로 호주는 안 돼요”라고 했다.

실망으로 뒤돌아 서던 내게 여직원은 “호주는 안되지만 뉴질랜드는 돼요. 뉴질랜드에서 3년만 거주하면 호주로 갈 수 있어요”라고 했다. 호주로 갈 수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결정하고 말았다. 하지만 뉴질랜드로 떠날 날이 가까워질수록 아는 사람 없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은 밤잠을 설치게 했다.

자신에 대한 분노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고국을 떠나 이민갈 날만을 불안하게 기다리며 매일을 술로 보냈다. 그런 와중에 별안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술 마시고 울고 잠들고 깨어나고를 되풀이 했다.

당연히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원래도 위가 좋지 않아 직장에 다닐 때도 위가 아프면 약국에 가서 가루약을 사먹곤 했었다. 입안에 털어 넣고 잠시만 있으면 고통이 사라지는 환상적인 가루약이었다.

그러다 약사의 충언을 따라 공복에 냉수 마시고 술도 줄이고 어쩌다 술을 마셔도 안주를 푸짐하게 먹었더니 위 아픔이 잦아들었다. 그런데 몇 날 며칠 깡소주를 퍼 마시기 시작하자 여지없이 예전의 그 고통이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위가 아프면 소주를 마셨고 소주를 마시면 고통이 사라졌지만 술이 깨면 또 위가 아팠고 그러면 다시 소주를 마셨다.

어머니를 땅에 묻고 울음을 그치고 보니 고국 떠날 날이 눈앞에 와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위의 통증은 계속됐다. 고국 떠나기 전 동네 약국을 찾아갔다. 내 고통을 들은 약사가 이름 모를 알약 한 통을 건네주면서 “이걸 다 먹어도 고통이 계속되면 큰 병원으로 가십시오”라고 했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 와보니 술 퍼 마실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한국을 떠나올 때 약사가 건네준 알약을 다 먹고 나자 계속되던 심한 통증은 사라졌다. 그러나 수시로 가벼운 통증은 계속됐다. 그럴 때마다 잠시 통증을 가라앉혀주는 냉수를 마시고 위를 달랬다.

이민 온지 10개월여만에 라디오방송국에 일자리를 잡아 프로그램을 맡아 방송을 진행하게 됐다. 생방송이었다. 방송 중에도 위가 쓰리면 음악을 틀어놓고 냉수를 마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애청자라는 분이 방송국을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어려운 방송국 사정을 알게 된 그는 적지 않은 후원금을 쾌척했다. 그 후로도 그는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음악을 신청하곤 했다.

그날도 차 한잔 나누자는 그를 만나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다가 위가 쓰려 냉수를 찾았다. 그러면서 나는 오래 전부터 위가 좋지 않다고 의미 없이 이야기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나에게 위에 좋다면서 선물을 보내줬다. ‘마누카 꿀’ 4병이었다.

선물 위에 “건강하셔서 방송 오래해 주세요”라는 메모를 남겨줬다. 그 마누카 꿀을 복용하고 나자 위의 가벼운 통증까지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난 모른다. 나에게 있어 마누카 꿀은 기적의 꿀이었다.

소주를 다시 신나게 퍼 마시기 시작했지만 위의 통증은 없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위의 통증을 모른다. 당연히 나는 절대적인 마누카 꿀 예찬론자가 되어 선전비 한푼 받지 않는 선전원이 됐다. 고국이든 어디든 누구든 언제든 위가 불편하다는 사람에겐 마누카 꿀을 ‘강추’했다. 헌데, 이젠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다.

며칠 전, 지구촌 이곳 저곳에서 판매되는 마누카 꿀의 50%가 가짜라는 소문이 요즘 고국에 파다하게 퍼졌다고 선배가 항의를 해왔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기반으로 한국교민이 운영하는 마누카 꿀 제조업체 ‘에버그린라이프’가 화학물질을 넣은 가짜 마누카 꿀을 제조한 혐의로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무려 64건의 기소를 당했다는 사실이 고국에 알려졌다는 거다.

내가 아직 명확히 판결되지 않은 사건이라고 변명해봤지만 선배는 “이제 마누카 꿀 추천하지 말라”고 했다. 한 사람의 부도덕한 행위가 마누카 꿀의 명예를 훼손해버렸다. 괜히 나만 이상한 놈 돼버렸다. 참 속상한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Previous article코리아타운 특별기획 : 소통공간으로 거듭나는 다이닝룸 식사와 소통이 특별한 추억이 되는 우리 집 다이닝룸 & 키친 아이디어
Next article뿌즈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