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북섬, 그 북쪽의 끝을 가다!

덤으로(?) 주어진 48시간, 키위 익스피리언스로 최북단 ‘리엥아 곶’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에 가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종단을 하고 싶고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면 동서로 횡단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암 수술로 절단된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캐나다 대륙 횡단 마라톤을 한 테리 팍스 (Terry Fox). 그도 캐나다 동쪽 끝 뉴펀랜드 (Newfoundland)에 있는 대서양 물을 병에 담아 서쪽 끝 태평양에 부을 계획을 세웠었다. 암 연구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01_내가 호텔보다 젊은 백팩커들과 어울리는 이유는…

뉴질랜드를 방문할 때마다 가장 남쪽에 있는 스트워트 섬 (Stewart Island) 그리고 가장 북쪽에 있는 리엥아 곶 (Cape Reinga)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북섬 오클랜드 (Auckland)에서 모임이 끝나고 출국을 할 때까지 정확히 48시간이 주어진 적이 최근에 있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자동차를 빌려 리엥아 곶을 하루에 다녀올 무모한 계획까지 세웠지만 극히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도만 보고 북섬의 크기를 대충 짐작한 오류였다. 나는 혼자 여행할 때 호텔을 마다하고 유럽에서 여행 온 젊은이들이 차고 넘치는 백패커 (backpacker)를 선호하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묵은 백패커는 시내 중심가에 있어 근처 가게에서 간단한 장을 봐서 젊은이들과 섞여 요리도 하고 터키식 사우나가 있어 땀을 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숙사 형태의 이층 침대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남녀 젊은이들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당연히 신발과 옷가지들로 방은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그 순간만을 참으면 그들과 늦은 저녁까지 실컷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뉴질랜드에 왔는지 그 동안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모았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여행을 했고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지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뉴질랜드 구석구석을 다닐 수 있는 키위 익스피리언스 (Kiwi Experience) 여행 패키지였다. 개인적 일정과 시간을 고려하여 맞춤형 프로그램을 찾아주는 여행사가 마침 백패커 옆에 있어서 다음 날 떠나는 버스를 예약할 수 있었다. 나의 48시간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02_일정 첫째 날, 워크워트에서 ‘맥킨리’와 ‘심슨’을 만나다

여러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을 태우고 오클랜드 시내 중심가를 아침 일찍 출발한 승합차는 첫 번째 목적지인 워크워트 (Warkworth)에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뉴질랜드 토종나무인 코리 (Kauri: 카우리보다는 코리가 더 정확한 발음이다) 두 그루가 이곳에 잘 보존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초창기 이곳에 정착할 당시 북섬에 무성했던 코리 나무는 그 뛰어난 상품성과 효용성 때문에 남벌이 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두 사람, 맥킨리 (McKinney)와 심슨 (Simpson)은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집들을 방문하여 코리 나무를 보존하자는 오늘날의 자연보호 캠페인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다행히 지금은 수령 800년이 된 맥킨리 나무와 600년이 된 심슨 나무 두 그루가 아직도 자라고 있다. 코리 나무가 어마어마한 크기로 성장하는 비결은 우리 인간들이 이 나무로부터 배워야 할 무언의 메시지였다.

나무는 줄기에 상처가 나면 스스로 오일 같은 분비물을 배출하여 상처를 본능적으로 치유한다. 실제로 코리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육안으로도 물방울 형태의 오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맥킨리 나무 뒤로는 한참 성장기에 있는 코리 나무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어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 나무가 습지에서도 잘 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북으로 다시 한 시간을 가면 두 번째 목적지인 왕가레이 (Whangarei, 또는 팡가레이라고도 발음한다)에 도착하는데 여기에서는 왕가레이 폭포 (Whangarei Falls)가 절경이다. 높이는 약 26미터로 수량이 많고 폭포 주위로 한 바퀴 돌면서 다른 각도에서 이 폭포를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03_다른 나라 원주민과는 달리 많은 권리 누리며 사는 마오리족

번잡한 오클랜드를 벗어나 자연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왕가레이에 정착을 하는 한국인 교포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곳 왕가레이에서 최북단에 있는 리엥아 곶까지가 약 260킬로이니 역시 첫날을 이런 식으로 느긋하게 구경하다 다음 날 가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옳았던 것 같다.

드디어 첫날 일정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파이히아 (Paihia)에서 마친다. 파이히아는 보석 같은 수많은 섬들이 촘촘하게 있는 Bay of Islands의 관문이다. 마침 승합차가 파이히아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세 시경이어서 카약 (sea kayaking)을 할까 아니면 등산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곧장 등산화로 갈아 신고 하루루 폭포 (Haruru Falls)까지 나 있는 등산로를 걷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파이히아 해변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1840년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된 역사적인 장소 (Waitangi Treaty Grounds)가 나온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토지의 소유권을 갖되 사회의 통치권은 영국 왕실이 행사한다는 조약인데 사실 이 조약 때문에 마오리족들은 다른 나라 원주민과는 달리 오늘날 많은 권리를 누리면서 살고 있다.

Waitangi Treaty Grounds 바로 길 건너편에서부터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폭포까지 편도가 4킬로로 한 시간이면 거뜬히 걸을 수 있다. 등산로는 숲과 강변 그리고 맹그로브 (mangrove) 숲을 지나는데 뉴질랜드 여느 관광지처럼 사람들이 거의 없어 사색하면서 걷기에 좋다.

왕가레이 폭포에 비해 하루루 폭포는 높이가 낮지만 폭은 넓어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루루가 마오리말로 큰 소음이라는 뜻이다). 돌아올 때는 다시 같은 등산로를 따라 나오면 된다.

 

04_일정 둘째 날,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리엥아 곶에!

파이히아 숙소에서 다음 날 리엥아 곶으로 가는 젊은이들이 많아 승합차가 대형 버스로 바뀌었다. 리엥아 곶 남쪽으로는 버스를 비롯하여 어떤 크기의 자동차도 고속도로 질주하듯이 모래사장을 달릴 수 있는 90마일 비치 (90 mile beach)가 있다.

공식적인 국도인 이 모래사장은 크기나 개인이 느끼는 스릴의 쾌감이 과거 퀸즈랜드주 프레이저 섬 (Fraser Island)의 백사장을 자동차로 달린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 광란의 질주가 끝나자 버스 운전사는 우리를 모래썰매 (sandboarding)를 탈 수 있는 거대한 모래언덕 (sand dune)으로 데려다 주었다. 부상 없이 안전하게 타는 법을 운전사로부터 설명 듣고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높은 모래언덕으로 올라가 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다행히 경미한 사고 없이 모든 사람들이 모래썰매를 즐길 수 있었다. 이제 버스는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북쪽 끝에 있는 리엥아 곶으로 향해 마지막 투지를 불태운다.

짐작하듯이 이곳은 마오리 사람들에게 아주 신성한 장소이다. 그래서 음식과 음료를 함부로 먹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도 기본 시설만 있으며 식수도 없다. 볼 것만 보고 빨리 자리를 뜨라는 의미인 것이다. 인간이 오래 머물수록 신성한 곳이 오염될 것이 뻔하긴 하겠다.

주차장에서부터 잘 만들어진 보도를 따라 등대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오면서 서쪽 타스만 해 (Tasman Sea)와 동쪽 태평양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도를 멀리서 감상할 수 있다. 인간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경외롭다.

 

05_북섬, 남섬 구석구석 버스로 여행하는 키위 익스피리언스

돌아오는 길에 버스는 우리를 망고누이 (Mangonui)에 데려다 준다. 과거 고래사냥이 한창일 때 명성을 누렸던 이곳은 최근까지 조용한 마을이었지만 몇 년 전 <Lonely Planet> 책자가 이곳에 있는 피시 앤 칩스 (fish and chips) 가게를 소개하면서 이제는 관광객들로 들썩인다.

물론 현지인들은 관광버스들이 실어 나른 긴 행렬의 관광객들 때문에 꺼리게 되지만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관광책자가 소개한 이 가게에서 피시 앤 칩스를 맛보고 싶어한다. 버스 기사는 이 점을 십분 이용하여 이곳 망고누이에 도착하기 전 미리 버스에서 주문을 받고 전화를 통해 예약을 하는 센스를 발휘하였다.

하룻밤을 파이히아에서 다시 보내고 다음 날 오전 늦게 오클랜드로 돌아가기 전까지 몇 시간이 남아 과감히 카약을 시도했다.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다행히 바람이 심하지 않아 구명복을 착용하고 식수와 전화기를 방수 비닐팩에 담아 출발했다.

처음에는 긴장을 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자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섬에까지 갔다 오는 모험도 감행했다. 마침 보슬비까지 뿌려 내 기분은 하늘을 나를 듯했다. 수 년 전 남섬의 넬슨 (Nelson) 바닷가에서 그림 같은 주변 풍경에 흠뻑 젖어 카약을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한 시간쯤 하고 돌아왔는데 한 젊은 부부가 카약을 하려고 막 출발한다. Bay of Islands에 올망졸망 흩어져 있는 섬들을 껴안고 흐르는 바닷길로 해서 여덟 시간을 다녀오는 코스를 한다고 한다.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즐겁게 카약을 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하늘 위 하얀 구름과 더불어 뉴질랜드 바다는 참 예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한 여행이었다.

키위 익스피리언스 (Kiwi Experience)…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의 구석구석을 버스로 여행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장점은 여행 도중에 본인이 더 머물고 싶은 곳에서 얼마든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다음 일정의 버스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광지에 있는 숙소나 특정 지역에서 하고 싶은 여가활동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는 편리함도 있다.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찰스스터트대 교수)

Previous article박해선의 영화, 살아가는 이야기 ⑥ 리타 길들이기
Next article스페인 남쪽에서 15세기와 마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