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장관 한번

1998년 2월 24일, 한국카톨릭계의 어른 김수환추기경이 한국불교계의 어른 법정스님을 명동성당으로 초청했다. 명동성당이 세워진 지 백 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강연회 자리였다. 김수환추기경을 비롯한 카톨릭 신도들은 법정스님의 법문 듣기를 청했다.

불교수행자가 명동성당 설교단에 올라 법문을 한 것은 그때가 최초의 일이었다. 법문 설파가 끝나자 김수환추기경은 두 손을 마주하고 고개 숙여 인사했고 법정스님은 합장하며 배례했다. 위대한 두 종교지도자는 종교와 종교간, 그리고 한 종교를 갖는 신도들 간에도 소통과 화합이 필요함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위대한 지도자의 참 모습을 보여준 숭엄한 광경이었다.

나는 종교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생활의 고뇌를 보듬고 화합과 공생을 도모하며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의 한 체계’라고 믿고 있다. 그런 내 눈에 비친 한국의 종교는 선동하고 선전하고 왜곡하고 편갈라 싸우는 광기 서린 망나니 같은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내게 두 위대한 종교지도자의 모습은 충격과 신선함을 가져다줬다.

지난 석가탄신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각 정당대표들과 함께 부처님오신날 경축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경축행사절차인 합장 배례를 하지 않고 고개를 뻣뻣이 들고 서있었다. 열렬한 개신교신자로 알려진 그는 자기가 믿는 종교의 규범을 따르겠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자신이 개인자격으로 그 자리에 서있는 걸로 알았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그는 정당대표로는 자격미달이다. 시쳇말로 치기에 빠져 분위기 파악 못하는 ‘팔푼이’가 돼버렸다. 혹여 정당대표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처신을 했다면 그거야말로 지도자로 나설 자격이 없다. 그런 편협한 그릇이 지도자가 되면 종교전쟁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아진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기총) 대표회장이라는 전광훈목사가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 목사는 발표한 ‘시국선언문’에서 “6만 5000 교회 및 30만 목회자, 25만 장로, 50만 선교 가족을 대표하는 한기총은 그 동안 한국교회가 이루어놓은 세계사적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문 대통령이 올해 연말까지 하야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청와대로 진격하자고 선동했다. 이 발언은 내란선동적인 지극히 위험한 발언이다. 젊은이들이 ‘쪽수 믿고 깝죽댄다’고 빈정댔다.

올해 25대 한기총대표회장에 당선된 전 목사는 전교조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지난 19대 대선 때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법정구속 된 이력도 있다. 그는 황교안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제 개인적 욕심으로 황 대표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이어가는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대통령 되면 나도 장관 한번 시켜주실 거죠”라고 했다고 한다.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정치꾼이다. 목사 자리보다 장관 자리를 더 탐내는 속물이다. 자기가 대단한 집단의 결정권자인줄 알고 꿈속을 헤매는 거다.

이런 인간이 종교단체의 대표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목사님’이다. 그냥 무섭고 소름 끼친다. 황 대표나 전 목사의 행태는 영혼의 구원을 기원하는 깨끗한 종교인들을 분노케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순수한 종교단체를 괴물집단으로 만들려고 한다.

나는 잘못 돼가는 종교를 일일이 지적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들의 말을 빌리면 ‘지옥으로 떨어져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쳐야 하는’ 무신론자로서, 세상을 쓰다듬는 바람을 멀거니 쳐다보는 무심한자로서 오직 내 생각과 느낌을 중얼거릴 뿐이다.

종교는 종교로써 있으면 된다. 종교가 속세에 물들어 택도 없는 계산을 하면 사이비가 되고 괴물집단으로 변해 사회의 암적 존재가 된다. 종교가 정치와 어우러져 한통속이 되면 그때부터 종교는 ‘악의 집단’이 되는 거다.

장관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자리인지 모른다. 허지만 나도 장관 자리 하나 준다면 별별 짓 다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별별 짓은 혼자 해야 한다. 신을 믿고 의지하는 따뜻한 사람들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종교가 지향하는 지고지순한 가치는 인간구원이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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