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구두

절벽에 다다른 사내가 발길을 멈추고 구두를 벗어 던졌다. 닳을 대로 닳은 굽을 쳐들고 검정구두가 뒤집어졌다. 어획용 그물코처럼 엉금엉금 뭉친 대기를 뚫고 흐르는 강물 소리가 사내의 심장을 후벼 팠다. 사내는 폭발되기 직전이었다. 어둠을 뒤집어쓴 수면은 보일 듯 말 듯 했다.

“으아악, 니미럴 좆도!” 사내가 풀뿌리를 획 걷어찼다. 엄지발가락이 잘린 것처럼 아팠다. 발가락에 부딪힌 것은 풀숲에 숨어있던 시커먼 돌이었다. 엉성한 그물망에 담긴 돌, 돌까지 사내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았다. 사내는 풀밭에 털썩, 주저앉아 아픈 발가락을 주물렀다. 수심 깊은 검은 물살이 야유하듯 꾸르륵댔다.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란 것을 사내는 잊고 있었다. 7월 31일, 쉰 살. 알 수 없었다, 왜 사는지? 땀띠로 고생하며 자신을 해산했다는 노모의 말이 기억났다. 뒤집혀 돌아가는 계절도 확인하지 않고 찾아 든 호주.

“개뿔, 땀띠는 고사하고 이빨 부러지게 춥군.” 사내가 혼잣말을 했다. 지나간 세월이 그랬듯 강물 또한 그에게 낯을 돌렸다. 사내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강물에 뛰어들면 그만이었다. 돌 같은 인생을 강물에 던져버릴 작정이었다. 사내의 인생은 돌과 같았다.

사내에게도 행운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더러 더러 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행운의 공이 사내 쪽으로 굴러 올 듯 폼을 잡다 반대 방향으로 굴러가 버렸다. 앞으로 엎어졌는데 뒤통수에서 피가 흐르기 일쑤였다. 이번엔 사내가 직격으로 뒤통수를 맞았다. 일확천금이 코앞에 있었는데, 외아들이 사내를 배신해버렸다. 사내는 죽는 일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내는 그물망에서 돌을 한 개 집었다.

“풍덩!” 힘껏 던졌다. 뭐라도 던져서 강물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유유히 흘러가던 강물이 풍덩, 하고 울음을 토하는 소리에 그는 흠칫 놀랐다. 추위와 충격에 불알이 눈밭에 뒹구는 찐 감자처럼 오그라들었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의 귀에는 하늘이 폭파되는 것처럼 들렸다. 적막을 뚫고 어깨를 뒤흔들며 토악질하는 물이 우는 소리는 꼭 사내 같았다. 시간은 낮과 밤을, 죽음과 삶을,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손바닥처럼 뒤집지 않는가. 밤을 뒤채며 아침이 먼 데서 고집스레 달려오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사내는 죽어야 했다. 아침이 오기 전에 어둠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서둘러야 했다.

“풍덩! 풍덩!”

사내는 연달아 두 개를 던졌다. 죽기로 맹세한 사내는 돌을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미 죽은 몸과 다름없는 갈잎 같은 사내의 영혼이 바스락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함에도 왜 돌이 강물에 떨어질 때마다 자신이 그토록 소스라치게 놀라는지 알 수 없었다. 문득 사내는 돌을 손바닥에 놓고 세차게 비볐다. 그리고 돌을 만질 때마다 다음 돌과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겠다고 맹세했다. 불법 카피한 영화필름처럼 지지지직 어둠이 벗겨지고 있었다.

“풍덩, 풍덩, 풍덩…” 사내는 자신을 던지듯 연거푸 돌을 던졌다. 전율하며 돌들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내는 자신이 강물에 뛰어드는 상상을 했다. 70킬로의 몸을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환영이 보였다. 돌과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 시간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물망엔 몇 개의 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운명이 사내를 낚아채기 직전이었다. 돌을 들고 뛰어들거나 돌을 던지고 곧바로 물속에 몸을 던지거나, 그게 그것이긴 하지만. 이제 돌은 사내였고 사내는 돌이었다. 돌 같은 인생을 살아왔고 돌 같은 존재인 사내의 가슴엔 적개심뿐이었다. 사내는 마지막 돌을 손에 들었다. 그 느낌은 그 어떤 물체보다 단단하고 견고했다. 돌의 감촉은 냉혹하기만 했다.

“번쩍! 번쩍! 번쩍!” 그때 동쪽에서 사내의 등을 훑으며 해의 정수리가 솟구쳤다. 사내의 손바닥에 있는 돌도 덩달아 빛을 발했다. 사내는 빛을 뿜고 있는 돌을 뚫어지게 보았다. 사내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며 정수리를 퍽 쳤다. 벌떡 일어서서 머리를 세차게 털었다. 손등을 꼬집었으나 감각이 없었다. 돌은 반짝반짝 빛을 뿜었다.

“씨발, 돌이 다이아몬드처럼 굴게 뭐람.” 사내는 땅에 펄썩 주저앉았다. 믿기지 않았다. 돌을 깨물자 사내의 치아가 부러진 것처럼 아팠다. 돌이 미치지 않았다면 다이아몬드처럼 보일 수는 없지. 하면, 다이아몬드가 자두 크기라면?

사내는 울음을 토했다. 어깨를 들썩일 때 눈물이 풀밭으로 떨어졌다. 가슴을 두드리며 풀밭을 치며 곡하는 사내의 꼴은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강물이 삼킨 돌들이 몽땅?”

“으아악!”

사내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사내의 절규가 수면위로 공중제비 되어 날아갔다. 사내의 몸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구쳤다. 쥐색 잠바를 확 잡아 당겼다. 모질고 질긴 사내의 인생처럼 화학섬유 잠바는 쉽게 찢어지지 않았다. 사내는 YKK지퍼를 이빨로 물어뜯었다. 잠바를 벗어 개똥처럼 절벽 아래로 던져버렸다.

“다이아몬드일지도 모르는 돌들을?” 사내는 풀밭에 떼굴떼굴 굴렀다. 사내의 울부짖는 소리에 새들이 멀리 도망가고 수면이 용트림 쳤다. 날이 밝아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사내는 눈물과 콧물을 닦았다.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사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는 족히 백 살은 되었을 노파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서 있었다. 사내는 화들짝 놀라 크윽, 울음을 들이마셨다. 노파는 한 번 죽었다 살아났다 해도 억지가 아닐 정도로 늙어 보였다.

“왜 이른 아침부터 절벽 위에 서서 울고 그래?” 노파가 주름진 귓밥을 만지작거리며 사내를 향해 물었다. 사내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일어섰다. 그리고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노파를 마주 뚫어보았다.

“나는 미친 인간이오. 당장 물에 빠져 죽어도 아깝지 않소. 다이아몬드일지도 모르는 돌들을 강물에 던져버렸소.” 사내는 천지신명께 고하듯 말을 토해냈다. 사내가 퉁퉁 부어 오른 벌건 눈동자로 정신이 나간 채 팔을 펼쳐 물속에 던진 돌의 분량을 표시하려고 몸을 뒤틀었다.

“주먹에 꽉 움켜쥐고 있는 건 뭐야?” 사내가 농담하느냐고 노파를 노려보았다. 사내는 돌을 쥔 주먹을 달달 떨며 의심과 분노가 가득한 눈빛으로 노파의 전신을 훑었다. 노파의 옷은 군데군데 꿰맨 자국과 솔기투성이었다. 옷 사이로 늙고 처진 노파의 살가죽이 삐죽 삐죽 보였다.

“자네가 강물에 던진 것들?” 노파를 쳐다보는 사내의 눈이 회오리처럼 흔들렸다.

“이 나이가 되기까지 수많은 인간들을 보았지. 물론 자네는 행운을 거머쥐었어. 그러나 그것을 행운이라 말하기엔…? 손아귀에 쥔 그것 당근 행운이지. 손에 쥔 그것?” 노파가 체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이게 다이아몬드가 아니란 말이오?”

“자네가 강물에 던져버린 것들 말인가? 돌이었지.”

“이것 말이요, 이것! 다이아몬요? 아니오?”

사내는 꽉 쥔 주먹을 노파의 코앞에 흔들었다.

“자네는 돌을 버릴 줄 아는 행운아야.”

노파는 가늘게 눈을 뜨고 물귀신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기랄, 빨리 말해주시오. 내 주먹 안의 이것이 다이아몬드요 아니요?”

“자네는 그냥 발길에 차이는 돌 같은 행운을 얻었어. 그러니까 썩어빠진 세상의 욕심 많은 인간종자에 속하는.”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요?”

“자네가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면 물속에 던진 것들이 돌이 아니라 다이아몬드여야 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대답이나 해주시오.”

“만약 그물망 가득 든 다이아몬드를 모두 물속에 던지고 마지막 남은 다이아몬드 한 개를 얻었다고 귀신에게 머리를 굽히는 인간이 진짜 행운아야.”

“……?”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좀 더 울어. 아니면 물속으로 당장 뛰어들던가. 아직 시간은 많아.”

사내는 손을 펴고 돌을 들여다보았다. 돌은 햇빛을 받아 쌍사변체의 복굴절로 반짝였다. 사내의 마음은 이제 자신의 돌이 진짜 다이아몬드이길 갈구했다. 평소 믿지도 않았던 신을 향해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사내는 노파의 확답을 듣지 못하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사내는 손바닥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노파가 없었다. 어디에도 노파는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후다닥 놀랐다. 아니, 아찔했다. 마음이 회오리처럼 흔들렸다. 사라진 노파를 믿을 수 없었다.

“어디서 굴러온 개뼈다귀 같은 할망구가.” 남자는 소리치며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햇빛을 받은 돌은 후광을 뿜었다. 그때 등 뒤에서 노파가 홀연히 다시 나타났다. 마치 요귀처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생각 하나만 바꾸면…….”

“……?”

“자네 손바닥 돌은 다이아몬드야.” 사내는 두 팔을 벌리고 환호했다. 물에 빠져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쯧,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인간종자들이 욕심을 비우는 것이 더 힘들지.”

“그럼, 욕심을 비우면 더 큰 다이아몬드를 가질 수 있나요?”

“쯧쯧, 일확천금엔 악귀가 달라붙어 있어. 그걸 아직도 모르고 이제까지 아까운 밥만 축낸 인간 같으니라고.”

“하긴 주둥아리론 잘도 지껄이지. 쯧쯧, 씨가 말라버렸어. 예수, 석가 다음에 인물이 안 보여, 인물이.”

“나는 욕심을 비우겠소. 약속하오.”

“비우고 안 비우는 것은 자네 마음이야. 그물 속엔 오직 한 개의 다이아몬드밖에 없었어.”

다이아몬드를 바라보던 사내는 얼굴을 들어 노파를 찾았다. 목숨을 걸고 욕심을 비우겠다고 말할 참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없었다. 노파는 없었다. 사내는 손안에 든 다이아몬드를 꽉 움켜쥐고 달렸다. 사내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한참을 달리던 사내는 찌그러진 코카콜라 캔을 밟았다.

“아얏!”

사내는 자신의 맨발을 발견했다.

“제기랄.”

사내는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달려 절벽에 닿았다. 검정구두는 뒤집어진 채 그대로 있었다. 사내는 숨을 헐떡이며 깊은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강물의 민낯은 어둠 속에서 봤을 때보다 물살이 훨씬 거칠고 사나웠다. 사내는 자신을 삼키려고 했던 강물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에라이.” 사내는 강물을 향해 돌팔매질을 했다. 조금 전까지 돌을 던지던 관성이 발동한 것이었다. “으아악 내 다이아몬드.” 사내는 다이아몬드를 찾으려고 거친 강물에 몸을 내리꽂았다. 강물은 순식간에 사내를 울컥 삼키고 말았다. 강물은 아무것도 모른 채 시침을 떼고 흘렀다.

그때 그물 같은 것이 사내의 발목을 감았다. 사내가 던져버렸던 쥐색 잠바가 강물에 숨어있던 뾰족한 돌에 걸려 있었다. 그는 잠바를 붙들고 죽을힘을 다해 간신이 물살을 헤치고 물 밖으로 나왔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절벽을 기어오른 사내는 한 동안 죽은 듯이 풀밭에 누워 있었다. 사내가 토해놓은 물이 다이아몬드처럼 해 아래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내는 엉금엉금 기어가 뒤집혀 있는 검정구두에 발을 꿰었다.

 

테리사 리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소설가·재외동포문학 소설 대상·민초재외문학상 대상·단편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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