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적들?!

에이든이 지금보다 더 아기였을 때, 녀석은 지 엄마 아빠보다도 그리고 할머니보다도 할아버지를 훨씬 더 많이 좋아했습니다. 특히 딸아이가 회사업무에 구원투수(?)로 투입되면서 최소 주 4일을 우리와 붙어살았던 8개월여 동안은 그 정도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녀석은 제가 화장실에만 가려 해도 졸졸 따라 나섰고 회사 일 때문에 몰래 뒷문으로 도망을 치면 제 차가 집밖으로 나가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는 “아빠!”를 외치며 대성통곡을 하곤 했습니다. 아내가 찍은 이 동영상은 지금도 저의 ‘최애(最愛)영상’이 돼있습니다.

우리 집에만 오면 지 엄마 아빠가 나가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퇴근시간이 돼서 지 엄마가 데리러 오면 안 가겠다고 버티는 건 물론, 가끔 우리가 지네 집으로 찾아가면 끝까지 자리에서 못 일어서게 하던 녀석이었습니다.

그러던 에이든은 동생 에밀리가 태어나고부터는 엄마 아빠 특히, 엄마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지만 여전히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넘칩니다. 그러한 녀석을 두고 아내와 저도 “에이든 최고!”라는 말을 아끼지 않습니다.

딸아이 부부가 에이든 하나만 낳고 더 이상 아기를 안 갖겠다고 했을 때, 그 아이들 결정이니 뭐라 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끼리는 ‘혼자는 외로워서 안 되는데… 하나는 더 낳아야 할 텐데…’라는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랬던 한때의 걱정이 이제는 48개월짜리, 16개월짜리 두 아기천사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게다가 두 녀석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자”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차가 우리 집 앞에 멈춰서면 너무너무 좋은 나머지 소리까지 꺅꺅 지른답니다.

얼마 전 저녁 무렵, 갑자기 문밖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 에이든 목소리 같은데?” 벌떡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딸아이가 두 녀석을 데리고 우리 집 마당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차일드 케어 센터에서 집으로 가던 에이든이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가자”고 하도 졸라대서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렸다는 거였습니다.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재잘재잘 신이 났고 엄마 품에 안겨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던 에밀리도 입이 함박만해졌습니다.

두 녀석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와 격렬한(?) 뽀뽀를 나누고는 지들 장난감이 있는 방으로 내달립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 이 녀석들은 과자창고(?)를 활짝 열어젖히고 지들 먹고 싶은 과자를 꺼내고 있습니다. 뽀로로 음료수는 기본입니다.

두 달 전쯤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딸아이 신랑이 예정보다 일찍 퇴근해 오고 있다는 전화에 막 우리 집 앞에 멈춰선 딸아이 차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와서 신이 났던 녀석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얼른 내려달라는 신호로 카시트 버튼을 톡톡 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차가 출발하자 두 녀석은 온 동네가 떠나갈 듯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딸아이 차가 큰 길로 접어들 때까지도 엄청 크게 들려왔습니다. 전에는 한 녀석이 그랬던 것을 이젠 둘이서 함께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행복과 고마움이 없습니다.

요즘 저에게는 또 하나의 ‘최애영상’이 생겼습니다. 에밀리가 공갈젖꼭지를 입에 물고 뽀로로 동요에 맞춰 춤을 추는 19초짜리 영상입니다. 노래에 맞춰 두 손을 높이 들고 흔들며 춤을 추다가 박수를 치며 눈웃음을 치는 모습이 너무너무 예뻐 시도 때도 없이 꺼내보곤 합니다. 특히 녀석이 노래 중간 두 번이나 웨이브를 찔러(?)넣을 때는 그 예쁨을 뭐라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전에 에이든이 하던 모든 것들을 이제는 에밀리가 그대로 따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여자아이라서 그런지 그 애교와 귀여움이 에이든보다는 조금 더 강합니다. ‘절대 남의 새끼한테 빠져들지 않겠다’던 약속이 제 품에 ‘와락’ 안겨 드는 또 하나의 ‘강적’이 나타나면서 여지없이 다시 무너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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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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