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장

“탈장 (脫腸)은 ‘내장탈출증’이라고도 한다. 인체의 장기가 제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흔한 것은 복부에서 일어나는 거다. 특히 불두덩 옆에 오목한 곳을 지칭하는 서혜부로 배 안의 장기가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서혜부 탈장은 왼쪽보다는 오른쪽에서 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중요하게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장폐색이다. 이는 장의 일부분으로 통하는 혈액의 흐름이 막히는 것을 의미한다. 장폐색은 발생부위에 심한 고통과 압통을 야기한다. 남성에게서 발생하는 서혜부 탈장 중 특별한 증상을 유발하지 않는 경우는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 탈장에 대한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내가 불편한 탈장에 시달리게 된 것은 6년여 전부터다. 그 무렵 문구류 장사를 하는 후배가 일손을 놓은 내가 안타까웠던지 “저희 점포에 나와서 아르바이트라도 하시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답답하던 차에 ‘노느니 염불 왼다’고 기꺼이 출근했다. 계산대는 주로 후배 부부가 맡고 나는 물건 진열하기와 정리정돈을 맡았다. 온종일 서서 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물건을 정리하는데 아랫배 오른쪽으로 뭔가 슬그머니 밀고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져보니 불룩했다. 손바닥으로 누르자 스르르 들어갔다.

그러나 누르기를 중지하면 다시 밀려나왔다. 통증은 없었지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분 나쁜 느낌이 있었다. 그것이 탈장이며 서서 일하는, 나이든 사람들이 쉽게 걸릴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렇게 3년여가 지났다. 여전히 통증은 없었지만 골프를 할 때나 테니스를 할 때나 장은 수시로 눈치도 없이 더 크게 밀고 나왔다. 그때마다 신경이 쓰이고 불쾌하고 돌아서서 손바닥으로 아랫배를 누르며 탈장을 밀어 넣는 내 모습도 민망했다.

아무래도 무슨 수를 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무슨 수라는 건 병원을 찾아가 수술을 받으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수다. 그러나 분명히 많은 수술비용이 요구될 것 같아서 병원 가기를 주저하면서 혹시 ‘무료 수술’ 하는 방법은 없는지를 수소문했다.

그대는 아시는지 모르지만 남편의 몸뚱이가 불편해질 때는 누가 뭐라 해도 아내가 최고의 협력자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조언자다. 아내는 조용조용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친구, 후배, 골프동호인, 교민식품점 주인 등등 만나는 사람마다 무료수술 방법을 귀동냥한 끝에 드디어 기발한(?) 처방을 얻어왔다. 그 기발한 처방이란 ‘가정의를 거치지 말고 응급실로 바로 가서 응급환자 행세’를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다만 반드시 ‘아파서 못 견디겠다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 필수였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까짓 아프다는 연기쯤이야. 얼굴만 잔뜩 찌푸리고 끙끙대면 되는 것 아닌가.

손 없는 날을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을 들어서면서 아랫배를 누르며 얼굴을 찡그리고 고통스럽다는 연기를 했다. 여의사가 탈장 부위를 만져보더니 “hernia (탈장)!”라고 말했다. 나도 응급실 소파에 누운 채 “yes! hernia”라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간호사가 작은 병실로 안내해 침대에 눕기를 권했다. 나와 아내는 음흉하고 흐뭇한 미소를 나눴다. 드디어 이 귀찮은 물건을 무료로 처치할 수 있다니 아, 이 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야!

여의사가 들어와 탈장 부분을 세밀하게 촉진한 후 나갔다. 잠시 후 여의사가 다시 들어오더니 보험에 가입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개인부담으로 이 수술을 받겠냐고 물었다. 나는 돈이 없다면서 이 수술은 무료 아니냐고 물었다.

여의사는 더 아프면 무료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지금 엄청 아프다고 했다. 그러자 여의사가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어깨를 다독거리면서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아플지 모르지만 집에 가면 안 아플 거다.” 여의사는 내 꾀병을 다 알고 있었다. 병실을 나서는, 솔직하지 못한 내 뒤통수가 너무 따가웠다.

그 후 다시 3년여가 흐른 지난달, 정말로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나는 실려간 병원에서 드디어 흔쾌히 무료수술을 받았다. 죽을 때까지 함께할 줄 알았던 탈장과 그렇게 기분 좋게 헤어졌다. 기다림의 미학인가?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