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에 대한 단상

제 목소리 내기에 급급한 우리 가족을 받아 줄 수 있는 가우치를…

가족이 함께 뒹굴 거릴 수 있는 카우치 (등받이 부분이 낮고 한쪽에만 팔걸이가 있는 휴식용 긴 의자)를 하나 가져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내가 일을 하고 있는 집들의 가구를 눈 여겨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집 거실에 있는 한 카우치가 내 눈에 쏙 들어왔다.

 

01_갑자기 카우치를 사겠다고 마음 먹은 데는

비싸 보이지 않는 것이 팔걸이와 등받이가 뚱뚱하지도 않았고 엉덩이를 받는 폭도 넓지 않아 편안해 보였다. 거기다 비슷한 사이즈의 두 개가 상황에 따라 위치를 바꾸기도 쉬워 방 2칸짜리 우리 유닛의 좁은 거실에 그다지 위협이 되어 보이지도 않았다.

카우치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집이 좁다는 것과 ‘나중에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서!’라는 핑계를 대던 내가 갑자기 이렇게 카우치를 사겠다고 마음을 먹은 데는 내가 일을 하고 있던 집의 주인이 바뀌면서 집과 홈의 차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날리스는 내가 홈 청소로 일을 하고 있던 집들 중 가장 크고 넓은 가든을 가진 네덜란드 유대인이다. 그녀와 남편은 건축자재를 거의 다 자신의 고국인 네덜란드에서 들여와 실내는 물론 가든에도 많은 정성을 들여 자신들의 집을 지었다.

그러나 도시 안에서 평온한 자연을 누리려 넓게 가졌던 집에서 5-6년을 살다 보니 그녀와 가족에게 점점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문제는 가든이었다. 네덜란드 식의 화단과 연못을 가진 잔디가 넓게 깔린 그 가든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넓은 잔디에 두 마리의 개들이 싸대는 똥을 찾아내고 떨어진 잔가지와 나뭇잎을 줍고 화초들을 돌보기에는 정기적으로 관리해주는 가드너 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02_아날리스가 살아가는 방식을 나도 모르게 배우고 있었던 나는…

그녀는 나에게 가든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너무 큰 스트레스라고 몇 번을 푸념하더니 급기야 그 집을 팔고 대신 바다를 뒷마당으로 가진 절벽 위에 지어진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이사를 간 집의 가구들은 두어 달 동안 매주 위치가 바뀌더니 드디어 자기들의 자리를 잡아갔다. 버릴 법도 한 낡은 천의 소파는 가족이 키우던 두 마리 개들의 털을 잔뜩 붙인 채로 여전히 패밀리 룸에 자리했고 나무로 짜여져 얇은 베드에 검을 천을 씌운 침대모양을 한 가구는 다이닝 룸으로, 다리가 부러져 벽에 기댄 채로 몇 년을 방치했던 조그만 탁자도 손을 보아 페치카 옆에 자리해서 키 작은 스탠드를 받치고 있었다.

120 년 전 아날리스 남편의 가족 중 한 분이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나무의 결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들이 간혹 내 손가락에 박히자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담에 자기의 아이들에게 물려줄 거라고 했던) 그 식탁도 닳아서 가운데가 곧 구멍이 날 지경이나 저녁식사 때마다 켰던 촛농을 미처 다 떼지 못한 채로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가장 좋은 위치에 놓여졌다.

이후 나는 아날리스가 살아가는 방식을 나도 모르게 배우고 있다는 것을 그 큰 가든을 가진 집을 젊은 부부가 사서 들어오면서 알게 되었다.

아날리스가 판 집을 사서 들어온 주인은 싱가폴에서 이사 온 다섯 살, 여덟 살, 열한 살의 자녀를 가진 부부였는데 나는 이 집도 일을 하게 되어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03_문화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 그러려니…

부부는 집의 마지막 잔금을 치르고는 집의 바닥을 뜯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공사를 벌였다. 창마다 길게 드리워진 우아한 커튼을 모조리 블라인드로 바꾸고 환하고 넓었던 부엌엔 공간 없이 붙박이장으로 콱콱 채워 넣었다.

문화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 그러려니 이해를 하려 했지만 나도 아날리스만큼은 아니어도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자기의 옛집을 새 주인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한 번씩 물어보는 아날리스에게 모조리 뜯어냈다는 커튼 이야기를 하자 아날리스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층 아이들 방에도 새로 가구가 채워졌다. 어린이 방에 헤드와 발쪽이 높고 검은 칠을 한 더블베드와 같은 종류의 오단 서랍장을 하나씩 놓으니 환했던 방들이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이사 갈 때 가지고 간 아날리스 18세 딸의 싱글 철제침대와 저절로 비교가 되었다.

한국에서 내가 살았던 꼬방동네에 정부지원으로 한 때 증 개축 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모두들 새집을 짓고는 새집에 헌 가구가 있으면 집을 버린다며 동네사람들끼리 경쟁처럼 새 가구로 바꾸던 기억이 되살아나 씁쓸했다.

가족이 모여 즐겨야 할 공간에는 장정 서넛이 힘을 주어야 움직일 육각형 마블테이블이 두 개나 놓여졌고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거기에 걸 맞는 의자와 카우치가 어떤 것일지는 짐작이 갔을 터이다.

 

04_우리 가족의 웃음, 슬픔, 희망, 투정, 원망 받아줄 카우치를

과자 부스러기를 흘려서도 안 되고 손자국을 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는 아이들의 실수를 감싸고 울음을 달래주고 까르륵거리며 웃는 아이들 밑에 깔려 항복하는 아빠가 아니라 세상의 경쟁에서 일찍 성공의 맛을 본 아빠가 신문을 펴고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남보다 앞서갈 수 있고 왜 앞서가야 하는 것, 또 그가 이룬 부를 자식들이 지켜나가는데 필요한 공부와 예의를 가르치는 부모들의 권위에 찬 공간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제일 먼저 카우치를 가지려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한 이민생활 10년, 그 싱가폴 부부처럼 부를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이 힘들다고 내 목청만 돋우느라 가족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 온 세월이다.

이제는 작은 딸의 방문을 열고 거실 한 켠 공간에 자신의 마음처럼 굳게 친 큰 딸의 커튼을 열어 젖히기 위해 카우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집에 아직 제 목소리를 내기에 급급한 우리 가족을 받아 줄 수 있는 가우치를 눈 여겨 본다. 우리 가족의 웃음과 슬픔과 희망과 때로는 투정과 원망을 모두 받아내 줄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카우치를….

 

글 / 정혜경 (글벗세움 회원·낚시 마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