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밭

요즘 미나리가 대유행이다 휘어진 누구 눈썹을 닮은 것 같은 산모롱이 돌아 만난 넬슨 베이* 아랫도리를 내리고 바닷물에 쪼그리고 앉아 푸른

중독 (콩트)

재수가 현관문을 들어서자 아내가 반색을 하며 반겼다. “아,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밥 먹읍시다, 밥! 밥만 푸면 돼요.” “아, 아

철조망의 나팔꽃

짧은 햇살 치켜 든 손   룩우드 공동묘지 노래 잃은 자들의 국경 철조망 보랏빛 나팔 한 소절에 담은 생의 음계

호투 잠자리

할로겐 램프의 강렬한 빛을 받으며 날개를 핀 크리스털 조각은 분명 호투 잠자리였다. 좌우로 대칭을 이루며 펴진 투명한 네 개의 날개 속으로

하지정맥류

연대기는 태초였을지도 눈길이 늦어졌을 뿐 40년은 되었나봐   어릴적 힘센 어른들 장단지에 불거진 그것들을 경이롭게 바라봤던거야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만삭이

Covid 일지

목이 매캐하다. 허리 디스크가 신호를 보낸다. 벌써 10주째, 주 6일 일하고 있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지만 폭주하는

정 많은 집

밤새도록 목 놓아 운다 굵은 빗줄기로 두들겨 맞는 양철지붕   한 때, 눈부시게 빛나던 나이테 풀며 힘들게 견디는 숨  

전쟁 속에 핀 사랑

“전쟁 속에서 핀 사랑이야.” “네가 전쟁 속 사랑을 알아?” “영화에서 봤어.” “어떤 영화?” “노트북” “노트북? 치매 걸린 아내가 써놓은 일기

지금

톡 톡 건드리다 말다 찔러보다 말다   간지러워   앞마당에 배롱나무 꽃 움찔 가만히 앉아있는 긴부리꿀먹이새 붉게   여름 한

끝물

앞마당 화단에 몇 달째 3미터가 넘는 기다란 목을 늘어뜨리며 장하게 피던 용설란꽃이 다 지고, 마른 대만 남아 매달려 있다. 마지막까지

생일케이크

달이 내려앉는다 제날짜를 찾아   햇수만큼 환하다   손뼉 사이사이 떠오르는 둥근 달   한차례 침묵의 계절풍을 맞는 촛불 따라

희미하게 살해 충동이 느껴지는 발라드 (단편소설 연재)

울타리를 타고 계속 기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출입금지’ 표지판을 본 내 심장이 석고처럼 굳어진다. 경고판에 겁먹어선 안 된다. 아하, 역시

추석 2020

–경에게    작은 오두막에서 기억이 자란다 끓는 연탄불에 물솥을 올리고 외출 나갈 작은 오빠 운동화 두 짝을 솥뚜껑 위에 엎어놨다 따뜻해진 발은

희미하게 살해 충동이 느껴지는 발라드 (단편소설 연재)

아내가 자살했다. 스스로 손목을 그었다. 시신에서 흘러나온 혈액 바다에 그 동안 복용해 오던 ‘침팩스’ 캡슐들 그리고 보드카가 병째로 뒹굴고 있었다.

우는 신발

– 진학 형에게     하늘은 울 일이 없어 이 땅에 울다 가는 거다 다 울고 오라는 세상 얼굴 내밀며 울지 않으면 엉덩이를 맞는 거야 울러 왔다는 거 잊지 말라고 그래서 피카소도 열심히 그린 우는 여인   나는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신발을 본 적이 있지 하늘에 줄 하나 걸어놓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떠나는 맨발을 올려다보며 울고 있는 가지런하고 어여쁜 구두를 보았지 울지 않으면 미치고 만다고 우는 아이들이 모여 평화스러운 골목 팀 스프리트 바람이 한참이던 양평의 들판 선아였던가 2월의 외딴 집

희미하게 살해 충동이 느껴지는 발라드 (단편소설 연재)

넌 나한테 죽은 사람이야. 넌 죽었어. 난 차갑게 미소 짓는다. 라이플엔 내 심장보다 뜨거운 블릿이 곧 장착될 것이다. 팔을 뻗어

꽃봉오리

얘들아 내 말 좀 들어줄래? 내가 왜 평생 혼자 사는지 아이도 못 낳는지   원래 난 예뻤거든 그날 그 일본

norfolk island*

섬의 길이 열리다   수평선을 넘고 넘다 고향 길 잃고 가족 친구까지도 잃어버린 나비 날개 찢어지는지도 모른 채 108배 넘는

잎 관 ㅡ마운틴 윌슨에서

늦은 여름날 장례식장 태양이 아직 머리를 드러내지 않았을 때   죽은 줄 알았던 유칼립투스들이 죽을힘을 다하여 끌어올리는 것   살아

땅에 내리고 싶어요

나는 게으르다. 팀을 따라 떠나는 단체 여행을 엄두도 못내는 이유다. 그런 내가 매년 1월1일이 지나면 여행을 떠난다. 전세계를 들썩이는 휴가가

스마트폰 3

ㅡ중독     생각을 묻는다 손안에   들여다봤을 뿐인데   일상의 틈새를 메우려 반려 했을 뿐인데 따로 두었다가도 요술램프 지니를

이번 주 온라인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