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밭

요즘 미나리가 대유행이다 휘어진 누구 눈썹을 닮은 것 같은 산모롱이 돌아 만난 넬슨 베이* 아랫도리를 내리고 바닷물에 쪼그리고 앉아 푸른

내 사랑 어부바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자주 있는 치매 환자의 탈출, 모두가 놀래 하지 않았다. 간호 보조사가 날 불렀다. 너싱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중독 (콩트)

재수가 현관문을 들어서자 아내가 반색을 하며 반겼다. “아,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밥 먹읍시다, 밥! 밥만 푸면 돼요.” “아, 아

로드킬의 눈물

화창한 날에도 먹구름은 순식간에 달려온다   도로를 가로 날아가는 새의 외마디 바퀴들의 굉음에 묻히고 생과 사의 중앙선 따라   찰나

매미 소리

매미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린다. 내가 있는 곳은 너무도 조용하고 한적한데 여기저기서 요란스럽게 울어 대는 매미소리는 내 어릴 적 고향집에서의 어느

철조망의 나팔꽃

짧은 햇살 치켜 든 손   룩우드 공동묘지 노래 잃은 자들의 국경 철조망 보랏빛 나팔 한 소절에 담은 생의 음계

해고된 날에

매니저가 한참을 설명한다. 뭔(?) 소리인지… ‘터미네이션’ 단어 한 개가 쏙 들어왔다. 뛰는 가슴을 누르고 심각한 표정으로 “나 지금 잘린 거야?”

호투 잠자리

할로겐 램프의 강렬한 빛을 받으며 날개를 핀 크리스털 조각은 분명 호투 잠자리였다. 좌우로 대칭을 이루며 펴진 투명한 네 개의 날개 속으로

늦은 산책

혹여 놓칠까 어미 손 꼭 잡고 땅에 둔 텅 빈 시선 지그시 깨문 한쪽 입술 점벙점벙 걸어가는 천진스런 딸  

개안 (開眼)

내 인생 사전에 ‘집수리’라는 단어가 추가될 줄은 미처 몰랐다. 초라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누추한 집을 큰 아들이 선뜩 계약을 하고 돈을

하지정맥류

연대기는 태초였을지도 눈길이 늦어졌을 뿐 40년은 되었나봐   어릴적 힘센 어른들 장단지에 불거진 그것들을 경이롭게 바라봤던거야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만삭이

제 사

두 분께 큰절을 올리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예비 며느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아버님의 연실 싱글벙글 하시는 모습에 나도 안도의 숨을 쉬었다

Covid 일지

목이 매캐하다. 허리 디스크가 신호를 보낸다. 벌써 10주째, 주 6일 일하고 있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지만 폭주하는

소금 꽃

뜨거운 햇살아래 목타는 하루 가족 위한 삶 바다가 휘청인다. 세파에 찢어진 하얀 물보라 심장은 소금기로 깃을 세웠다. 가난이 뙤약볕에 졸여져

본다이 비치

시드니의 삶은 내가 그 바다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게 했다. 엎드리면 코 닿는 곳. 하지만 늘 스치며 지나가야 했던

정 많은 집

밤새도록 목 놓아 운다 굵은 빗줄기로 두들겨 맞는 양철지붕   한 때, 눈부시게 빛나던 나이테 풀며 힘들게 견디는 숨  

코스모스 추억

두어 달 전부터 우리 집 우편함 밑에 키 작은 코스모스 몇 개가 피기 시작하더니 현관 앞을 풍성하게 채웠다. 빨강, 연분홍

이방인의 거리

비 오는 날 거리를 나선다 차가운 빗방울이 온몸을 타고 내려온다   빗물에 흠뻑 젖은 빵을 쪼는 갈매기 허기를 채울수록 몸은

전쟁 속에 핀 사랑

“전쟁 속에서 핀 사랑이야.” “네가 전쟁 속 사랑을 알아?” “영화에서 봤어.” “어떤 영화?” “노트북” “노트북? 치매 걸린 아내가 써놓은 일기

시절인연

봄이 왔다. 찬란한 봄이 왔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공기에는 연두 빛 새싹들과 오색의 꽃들이 뿜어내는 향기들로 가득하다. 동화 속에 나오는

지금

톡 톡 건드리다 말다 찔러보다 말다   간지러워   앞마당에 배롱나무 꽃 움찔 가만히 앉아있는 긴부리꿀먹이새 붉게   여름 한

이번 주 온라인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