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토양이야”

로버트 할리가 마약투약 혐의로 체포된 뉴스를 접하고 스친 생각은…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될 때 그의 선거진영에서는 부시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불경기의 장기화를 십분 활용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으로 민심을 파고들어 대선의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로버트 할리가 마약투약 혐의로 체포된 뉴스를 접하고 내 머리에 스친 생각은 바로 ‘바보야, 문제는 토양이야’였다.

 

01_좋은 것들 한국에 퍼뜨리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내가 사는 곳은 시드니에서 세 시간 떨어진 내륙인데 이곳의 토양은 한국과 전혀 딴판이다. 이곳은 비가 자주 오지도 않지만 가끔 쏟아지는 비는 목말라 있는 대지를 항상 거칠게 다룬다.

그나마 좀 있는 무기질이 토양에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산 씨에서 자라는 깻잎, 상추 그리고 쑥갓에서는 전혀 한국야채 내음을 따라잡을 수 없다.

심지어 봄철 양지바른 밭뙈기 한 켠에서 올라오는 쑥도 맡아보면 겨우내 움츠려있던 몸의 감각을 깨우기는커녕 쑥만의 독특한 내음도 없다. 한번은 한국에서 돌산갓김치 씨앗을 가지고 와 제법 키워 김치를 담아보았지만 톡톡 쏘는 매콤함이 전혀 없어 그것을 기대한 내 코만 무색해진적도 있었다. 토양이 종자의 독특한 형질까지 지배를 하는 셈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그 동안 경험했던 좋은 것들을 한국에 퍼뜨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한국의 토양이 내가 뿌린 씨앗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떤 씨앗은 발아조차 되지 않았고 운이 좋아 발아가 되었어도 한국 토양에 이미 자리잡고 있던 병충해로 금방 시들해져 버리기 일쑤였다. 나름대로 애쓰게 토양의 수분과 질소 함량을 맞추어 토양 미생물이 풍부한 곳에서 자라게 했던 작물도 누군가에 의해 어이없이 짓밟히곤 했다. 물론 당시 외국에서 유학한 후 한국의 토양에 자신들의 체질을 맞추어 적응을 빠르게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02_국제사회 기준에 벗어나는 한국서 목격한 행위들

그 중의 하나가 강의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선배교수에게 배운 대로 은근하고 반강제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서를 구매하게 만든다. 각 장마다 숙제 문제를 집어넣어 그 숙제 제출을 교과서로 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교과서를 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과감히 자신들 씨앗의 유전자를 한국 토양에 맞게 조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한 후배교수는 매년 논문을 못써 불안해하는 교수들에게 과제연구비를 신청하게 만들고 논문은 그가 써주는 식으로 적응해가고 있었다. 데이터가 많아 논문 쓰는데 전혀 지장이 없던 그는 그 관행에 오랫동안 재미를 들였다.

호주에서 살면서 과거 한국에서 목격한 행위들이 얼마나 국제사회의 기준에 벗어나는지 깨닫게 되었다. 하루는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학생이 다가왔다. “고등학교 때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수소결합과 이온결합을 이렇게 쉽게 설명해줄 수가 있나요?” 하면서 얼굴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다. 마치 선문답에 대한 답을 찾은 구도자의 선한 표정이다.

그 학생이 들고 온 초콜렛 박스를 동료들이 함께 차 마시는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알아서 드세요 (Help yourself!)’ 라는 쪽지와 함께…. 명절 때만 되면 학생들이 들고 온 선물 보따리를 한아름 안고 퇴근하는 한국 교수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선물 부피가 자신의 인기와 실력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03_연구비로 식사하는 한국, 토질 다른 토양이 빚어낸…

강의 내용에서 모르는 것이 있어 방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이 가끔 있다. 특히 여학생이 찾아오면 방문을 반드시 열어놓아 미연에 불상사나 소문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대학교수 방은 항상 닫혀져 있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연구실이라는 말처럼 매 순간을 연구에만 매진하고 있을까? 호주에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곳 대학에서는 연구비를 취득하면 1센트까지 철저하게 대학본부에서 관리하고 물품신청을 할 때마다 사전 그리고 사후 점검을 받는다. 내가 근무할 당시에 비해 지금은 연구비관리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연구비 횡령과 대학원생들에 대한 연구비 미지급이 비일비재하다. 연구비를 가지고 식사하는 것이 일반화된 한국… 토질이 다른 토양이 빚어낸 문화의 차이다.

한국에서 사제의 길을 걷는 어릴 적 절친은 해가 갈수록 비만해진다. 독신생활에 매일 음주로 인해 그렇단다. 또한 생활하는데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알아서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준다.

 

04_호주사회는 수평적 관계… 서로 빚질 이유 없어

이 친구와 고등학교 때 점쟁이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평생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고 살 팔자라는 점괘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지금도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한국에서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신자들도 스스로 비굴해진다. 수직관계가 놀랍다. 호주사회는 수평적인 관계로 이어간다. 서로 빚질 이유가 없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내일 학장이 중요한 회의를 한다고 해도 내 휴가 날이면 상관없다. 구차해질 필요가 없다. 토양의 차이다.

한국에서 성실하게 생활하는 분들을 만나면 존경스럽다. 주위에 널린 함정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이 부럽다. 동시에 나는 한국이 무섭다. 그곳 토양에서 자라는 음주문화, 과속문화, 외도문화, 수직적 조직문화, 끼리끼리 문화, 비리문화의 잔가지들이 지천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나는 스스로 여행제한 국가라고 지정한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여행경보를 발령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 그 많은 덫에 빠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실했을 로버트 할리, 한국 연예계 토양에서 있었기에 마약에 손을 대지는 않았을까? ‘바보야, 문제는 토양이야.’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챨스스터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