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꼰대

이번 주말에는 우선 컴퓨터 게임부터 시작해볼까?

몇 주 전, 내 거주지 국회의원으로부터 생일카드가 도착했다. 60세 생일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참 많은 세월이 내 앞을 훅훅 지나가고 있다. 요사이 우리 동년배들에게 따라붙는 ‘꼰대’라는 용어를 생각하면서 나도 혹시 세상을 내 중심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01_화들짝 놀랐다나는 이미 꼰대가 되고도 남을 요소들을

그러면서 화들짝 놀랐다. 나는 이미 꼰대가 되고도 남을 요소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현대판 조기유학이 내 인생 초반부터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때가 1960년이니 유학은 해외가 아닌 타향이었다. 가정폭력이 난무했던 그 시절에 우리 부모님도 십중팔구 언성을 높여 싸움하던 중 엉겁결에 내린 결정이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짐작컨대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챈 엄마에게는 이 길이 최선의 방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타지에 보내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취가 아닌 하숙이었다.

집 밥보다 하숙집 밥을 더 많이 먹게 되는 인생의 시작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인생을 자포자기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았다. 남편은 이미 딴 살림을 차려 나름 인생을 즐기고 있는데 아들까지 타지에 보낸 엄마… 화투는 그렇게 팍팍한 인생에 그녀의 유일한 낙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휩쓸었던 부인들의 춤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오로지 화투에만 올인했다. 화투꾼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게 마련이다. 우리 집은 화투꾼들로 매일 득실거렸다.

요즘의 아이들처럼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그런 집안의 분위기는 언감생심이었다. 지금도 가끔 눈을 감으면 그 화투짝에 그려진 그림과 담배 불 구멍이 군데군데 난 군청색 담요가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02_내 안에는 호불호가 극명히 구분이 되는 의식이 자리 잡기 시작

술을 엄청 좋아했던 아버지는 분명 술로 인해 외도를 시작했음에 틀림없다. 귀가가 늦은 아버지는 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맛있는 카스테라를 주곤 했는데 매일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두 집 살림살이를 시작한 아버지는 새로운 자식들이 태어나자 나를 타지로 유학 보내고자 한 엄마의 결정에 선뜻 동의하였다. 그때부터 하숙비가 꾸준히 지급 되어서 그나마 굶지 않고 하숙집에서 대접도 받고 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가?

세상천지 멀쩡한 부모 놔두고 10대 초반부터 타향에서 하숙생활을 한 내 인생도 기구하지만 그런 결정을 한 우리 부모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부모의 자식답게 나는 하숙생활을 하면서도 부모가 그리워 괴로워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답지 않은 아이로 성장을 했다. 머리의 성장점이 일찍 닫힌 셈이다.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비사교적인 성격을 덤으로 얻게 되었다.

나이에 비해 사려 깊고 독립심이 강하며 씩씩하다고들 했지만 어디까지나 하숙집에 드나들던 아줌마들의 짠한 마음이 가미된 듣기 좋은 칭찬에 불과했다.

아들이 하숙집에서 어찌 사나 보기 위해 가끔씩 들른 엄마를 놓고 아줌마들이 얼마나 입방아에 올렸는지 짐작이 갔으니 말이다. 부모와 신체적으로 떨어져 오래 살다 보니 내 안에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구분이 되는 의식이 점점 자리 잡기 시작했다.

 

03_, 담배, 여자, 외도, 도박, 잡기 등에 대한 혐오감이

그러면서 부모와 관련된 단어들 즉, 술, 담배, 여자, 외도, 도박, 잡기 등에 대한 혐오감이 생겼다. 당연히 그 어휘들에 수반되는 재능들이 퇴화하기 시작했다. 동물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필요 없는 신체의 일부분이 퇴행되는 것처럼….

지금도 처음 만나는 한국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 중 ‘술을 잘 마시게 생겼다’ 는 말을 듣는다. ‘아무렴 누구 아들인데…’ 그때마다 나는 쓴 웃음을 짓곤 한다. 술이 없었다면 아버지의 외도가 일어났을까 생각하니 술에 대한 애착이 생길 리 없다.

담배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들이 한때나마 담배를 피웠을 때 나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잠깐의 시기만 지나가면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쓰라린 내 성장과정이 빚어낸 조바심 때문이었다.

한국은 술에 찌든 나라이고 외도의 천국이라고 가끔 비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이런 내 관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껏 내 인생에 연애라는 단어는 없었다. 중매로 만난 아내가 아니었으면 내 인생이 어찌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다행이 중매가 대세인 시기에 결혼적령기가 된 것은 천운이었다.

 

04_이런 나의 시각은 현대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고…

큰 아들이 목하 열애 중인 것을 보면서 더욱 격세지감을 느낀다. 고등학교 때 물리선생이 해수욕장에 다녀온 여자들은 절대 며느리로 들이지 말아야겠다는 말씀을 전적으로 믿었던 나였으니까….

노름과 관련된 잡기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것 또한 나만의 특징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즐기는 컴퓨터 게임도 마찬가지다. 이제껏 해본 적도 없고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기까지 했는데 내 자식들이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그 동안 혼자 속앓이를 많이 했다.

이런 나의 시각은 현대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친구들이나 가족과 격리될 수 있는 위험한 요소들이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보면 불편하다.

나의 편향된 의식을 21세기에 맞게 꾸준하게 개선시켜주는 것이 아내의 잔소리고 지적이다. 다행히 결혼 전 동거나 호주에서 대세인 파트너라는 관계에도 점차 내성이 생기고 있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천천히 그런 것들과 정면으로 대면해 보고 싶다. 이번 주말에는 우선 컴퓨터 게임부터 시작해볼까?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챨스스터트대학 교수)